영국 식민통치로부터 독립 선언한 날
독립이 되기 전까지 미 동부 13개 식민지(13개 주로 당시엔 식민지였음)는 영국지배하에 있었다. 당시 영국,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포루투칼 등 세계 열강들은 각각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플로리다 지역을 포함한 남부지역이 스페인과 프랑스에 점령당한 반면, 미 동부 지역은 영국의 힘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 와중에 패트릭 핸리와 토머스 페인의 노력은 미국 의 독립심을 자극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핸리는 1775년 리치몬드 시민대회에서 영국정부에 대해 '자유가 아니면 주검을 달라.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라고 기염을 토했다.
또 페인은 '상식(Common Sence)' 이란 책에서 "영국의 군주제는 ‘자연법'(law of nature)에 위배되는 정부 형태 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의 주장인 즉 아메리카와 같은 거대한 대륙이 영국과 같은 작은 섬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법에 어긋난다는 것. 당시 페인의 책은 호평을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 없는 과세 없다 ' 영국 과세 부담에 미 동부 13개 식민지 저항 시작
영국정부는 식민지들이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하도록 사탕조례, 차조례 등 갖은 세제를 제정, 식민지를 압박했다.
그러자 미국은 영국 의회에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으므로 영국은 식민지인에게 내국세를 부과할 권리가 없다는 뜻으로 “대표 없는 과세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라는 유명한 논리로 반기를 들었다.
이에 영국 황실 군대는 메사추세츠주를 침공했고, 이때부터 비공식적인 미 독립혁명 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국 황실 군대 침공, 미 독립 불씨 당겨
영국이 공격하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 13개 식민지 대표는 1776년 5월 2차 대륙회의 에서 공식적인 독립선언 준비에 착수했고 두달 후인 7월 4일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선언문 완성과 께 마지막으로 독립선언 결정 투표에 들어갔다.
그 결과 13개 식민지중 펜실바니아와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반대표를 던졌고 델라웨어는 무투표 그리고 뉴욕 대표는 결석으로 결국 9개 식민지의 찬성을 획득, 독립 선언이 결정됐다. 이 날이 바로 미국에서 가장 큰 공휴일로 지키고 있는 독립기념일이다.
사실 독립선언문이 공식적으로 낭독된 것은 7월 8일. 필라델피아 독립광장에서 선언문이 읽혀졌으며 당시 광장에 있던 '프로빈스 벨' 은 '리버티 벨' 로 명명됐다.
1776년 독립선언, 1787년 초대 대통령에 조지 워싱턴 선출
한편 영국은 미국과 8년간 전쟁을 벌이다가 1781년 요크타운에서 패전하자 1783년 파리평회의에서 아메리카합중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현재 독립기념일에 벌어지는 퍼레이드와 불꽃놀이 그리고 바베큐 등은 이 때부터 줄곧 내려오는 행사이다.
성조기의 별과 줄, 그 의미는?
연방의회는 1777년 6월 처음으로 성조기를 인정했다. 당시 국기는 13개주를 상징하는 13개의 별과 줄이 그려져 있었으나 미 합중국에 합류되는 주들이 증가하면서 줄을 채울 공간이 마땅치 않아 결국 의회는 1818년 별은 주의 수만큼 증가 시키되 줄은 초기의 13개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한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성조기에 대해 "우리는 별들을 천국에서 가져왔다. 붉은색은 본국(영국)을 뜻하고 붉은색을 나누는 흰 줄무늬는 우리가 이제 본국에서 분리됐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또한 자손 대대로 자유를 상징해 줄 것이다." 라고 말하며 당시 편만해 있던 미국의 독립심을 나타냈다 한다.
<국기에 대한 선언: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불꽃놀이 역사
▲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불꽃놀이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폭죽은 6세기경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폭죽은 요즘 중국인의 결혼식이나 신년행사에 쓰이고 있는 파이어크랙커 정도였다.
14세기부터 유럽인들은 화약을 이용해 흥미삼아 폭죽을 즐겼고, 이태리와 독일은 불꽃놀이 전문나라가 되기도 했다.
중세시대때는 폭죽을 떠뜨리는 사람을 '그린맨' 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그들이 폭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생나무잎으로 온통 감쌌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는 1486년 헨리 7세 왕 결혼식에 폭죽이 씌여졌으며 1749년에는 세기의 음악가 헨델도 '왕궁의 불꽃놀이' 라는 주제로 교향곡을 쓸 정도로 불꽃놀이는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불꽃놀이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기해 더욱 화려해졌으며 1987년 독립기념 2백주년을 맞아 뉴욕 자유의 여신상에서 쏘아 올린 불꽃놀이는 아직도 가장 화려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실 대포발사와 불꽃놀이등 행사는 1900년대까지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따라서 많은 시에서 폭죽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전문가들에 의해 불꽃 놀이가 진행돼 문제점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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