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일 화요일

주기철 목사의 아내 오정모 사모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동역자를 주셨으니
바로 두 번째 부인 오정모 사모였다
오정모 사모는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분이었다 

주기철 목사님이 몇 달간 감옥살이를 하고 가석방이 되었을 때 
감옥을 나온 남편에게 한 첫 마디가 승리요? 였다
감옥에서 신앙승리를 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한 말은 
다시 감옥에 갈 준비를 하시오 였다

주기철 목사님이 마지막 감옥살이를 4년 정도 하셨을때
몸이 극도로 쇠약해서 일경이 오정모 사모에게 통지하여 
주기철 목사님을 모시고 나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는 감옥에서 순교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순교 전날 오정모 사모는 주기철 목사님을 면회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내가 책임질테니 목사님은 순교하시오
목사님이 순교하셔야 한국교회가 삽니다

해방의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일제의 탄압은 극심해졌다
영혼을 굴종시키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영혼뿐 아니라 몸까지 만신창이가 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원히 새벽은 오지 않을 듯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먼 데 계신 하나님 대신 
가까운 폭력 앞에 엎드렸다 

최후까지 신사참배 거부한 남편을 지켜준 버팀목
우상·현실과 타협 않고 굳은 신앙의 삶 
주기철 목사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일년 앞둔 44년 4월 21일 밤 9시 30분 순교했다

많은 교회들이 신앙과 민족을 동시에 저버렸던 때에 
주기철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자존심을 지킨 인물로 부활했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를 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회가 폐쇄된 뒤에도 남편을 대신해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에게 신앙을 지키도록 독려 하면서 
주기철 목사님이 최후까지 일제에 항거할 수 있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오정모 사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안도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여고를 졸업한 
오정모 사모가 주기철 목사님을 만난 것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몸이 아파 머물러 있던 
부산의 초량교회에서 였다

오정모 사모는 주기철 목사의 아내로 세 살 위인 
안갑수(1900~33) 사모와  언니 동생하며 지낸사이였다

그 후 마산의 여고 선생으로 가 문창교회를 다녔는데
우연인지 기연인지 주기철 목사가 문창교회 담임으로 부임해 왔으며
안갑수 사모는 얼마 뒤 종기 수술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기 전
오정모 사모를 불러 주기철 목사님과 아들 4형제를 
돌봐 줄것을 부탁하고  운명하셨다

주기철 목사님의 아이들은 당시 15, 12, 7살이었고 
막내 광조는 갓 돌을 지난 때였다 

독신 여성으로서 교육가를 꿈꿨던 오정모 사모는 
결혼 3년만에 주기철 목사님이 투옥돼 가시밭길을 걸어야했다

오정모 사모는 먹을 것이 없었기에 
하루 걸러 금식 기도를 했고
한달에 3일은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금식기도를 했다
몸은 연약했지만 기도의 힘 때문이었는지 
귀신 들려 미쳐 날뛰던 사람들도 그의 앞에선 순한 양이 되었다

우상숭배에 동참하면서 변절했던 교단과 교회는 
해방이 되자 반대로 주기철 목사 우상화에 나섰다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주기철 목사의 동상을 세우려 하자 
왜 주기철 목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느냐 면서 
호통을 쳐 물리칠 정도로 오정모 사모는 철저했고
믿음을 지켜 나겄다

오정모 사모는 말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는데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겪은 고통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며 
마취를 거부했다

그를 속여 마취한 뒤 수술한 이는 장기려 박사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정모 사모의 투병과정을 지켜본 
장기려 박사는 한 순간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얼굴에 빛을 가득 내뿜으며 하늘나라로 향하는 
오정모 사모에 대해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추가될 만한 믿음의 영웅으로 평가했다

오정모 사모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장교 두 명이 찾아와 김일성 장군이 보냈다며 
상자 두 개를 내려 놓았다

상자 안엔 지폐가 가득했다
논밭 문서와 적산 가옥 문서도 있었다
오정모 사모는 주기철 목사님이 후세에 이런 선물을 받으려고 
순교한게 아니기에 뜻은 받지만 물건은 받을 수 없다 며 돌려보냈다

이를 보고 입이 댓자나 나와 있던 광조를 앞에 앉힌 
오정모 사모는 시편 37장 25~26절 을 펼쳐 읽게 했다

착한 사람이 버림받거나 그 후손이 구걸하는 것을 
나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보지 못하였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선선히 꾸어주며 살고 
그 자손은 축복을 받으리라 

주광조 장로는 
남하해 홀로 살아가면서 그 때 큰 돈을 받지 않은 어머니가 
많이 원망스러웠지만그 시편 말씀은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한 
위대한 유산이었다고 회고했다.
[출처] 오정모 사모 - 주기철 목사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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